영화도 좋아하고, 문구류도 좋아하는 내가 어떤 관심이 많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아, 미디어에 등장하는 문구류를 찾아서 말을 해보자, 하고 생각했다. 왠지 무척 재미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내가 좋아하는 문구류를 발견했을때의 반가움을, 기록해두면 어떨까 했다.
올해 유난히 많이 내렸던 눈을 보면서 생각났던 영화 '윤희에게'(임대형 감독, 김희애 주연)은 잔잔한 여성 퀴어 영화이다. 청룡영화상에서 임대형 감독님은 감독상, 각본상을 수상했는데, 퀴어영화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오던 윤희에게 도착한 한 통의 편지, 그녀가 사랑했던 첫사랑 '쥰'에게서 온 편지로부터 윤희는 딸과 함께 일본으로 떠난다. 그리고는 다니던 일도, 장소도, 또 헤어진 남편과도, 오빠와도 잠시 떨어지고 새출발을 다짐한다.
그 새출발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가 쓰는 이력서에 등장하는 볼펜은 프랑스의 소시에떼 BIC(빅)사의 크리스탈볼펜이다.
1945년 프랑스의 마르셀 빅(Marcel Bich)이 세계 최초로 볼펜 발명 특허를 보유한 라슬로 비로의 특허를 사들여서 설립한 회사로, 최초로 볼펜을 대량 생산한 회사다. BIC 볼펜은 매우 흔하게 우리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데, 아주 저렴한 가격에 품질 좋은 볼펜을 제공하고 있다.
고급형 제품을 출시 하지 않는데, '쓸데없는 장식이나 기능을 줄여, 핵심적인 기능만을 제공하는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최고의 품질로 제공'한다는 철학이 있어서라고 한다.
국내에서는 저렴한 볼펜으로 각광받는 '모나미'사의 153이 있기 때문에 보편적인 펜은 아니지만, 0.7mm으로 굵고 부드러운 점이 큰 매력이라 가성비가 좋은 제품으로 항상 나의 펜꽂이에 있는 제품이기도 하다. 미국에나 유럽에서는 가장 많이 팔리는 펜이라는 점은, 대중들에게 가장 친근한 펜이라는 것이겠지.
다른 제조사와는 다르게, 빅 제품의 볼펜의 뚜껑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 어린이가 볼펜 뚜껑을 삼켰을 때 질식하는 것을 최대한 예방하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나는 특유의 부드러움과 끊김 없는 매끄러움 때문에 그림그릴때 많이 사용했다. 마치 사인펜 같은 느낌의 진함이 있었다. 윤희는 저 볼펜으로 이력서를 쓸 때 꽤 단단한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이 공존했을까. 최종학력 '고졸'을 예쁜 글씨로 쓸때만큼은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는 것 같았다. 저 장면에서 비싼 고급 펜이나 만년필은 어울리지 않았을 것 같다. 보통의 사람들이 힘을 내고, 모두가 보통일 때 우리는 더 빛날 수 있다. 왠지 동성애 문화에 관대한 나라의 볼펜이 등장하니 반가울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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