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오랫동안 길들여진 물성에 물든다.
갑자기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로 가위질을 하려할 때의 불편함처럼,
손에 익숙한 물건을 바꿀때에는 큰 노력이 깃든다.
하지만 또 바뀐것에 익숙해지면 원래로 돌아가기를 꺼리기도 한다.
나에게 0.3 샤프는 이런 습관의 변화를 주었다.
샤프라는 존재를 알게 된 어린시절부터 지금껏 0.5 심을 주로 사용해온 터라 다른 심굵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필기할 때 세필을 좋아하는 나는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더 얇은 것을 찾게 되었고,
결국 0.3 mm의 샤프를 내 손안으로 들이게 되었다. 그때 찾게 된 것이 펜텔 그래프1000 이다.
이 샤프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고 알고 있다.
특히 0.4mm의 샤프는 0.5의 단점을 보안하고 0.3의 장점을 느낄 수 있는 궁극의 샤프라고들 일컫기도 하다.
그래서 구매 당시 고민을 했는데,
필기를 자주 해야하기 때문에 쉽게 구할 수 없는 심보다는 좀더 가까이 자주 찾을 수 있는 0.3으로 택하였다.
펜텔 그래프 1000 FOR PRO는 1986년에 만들어져서 일본과 한국 모두 샤프 분야의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펜텔만의 정확한 심의 배출량, 듀얼그립으로 만들어져 손과의 높은 밀착력, 계단식 선단,
가겹고 부드럽지만 잔고장이 드문 튼튼함 등이 이를 증명하는 듯하다.
다만 오래 사용했더니 어떤 샤프였냐는 듯 금세 이름을 잃어버리곤 마크가 지워져버렸다.
이런 친숙함으로 나를 완전 밀폐시켰던 이 샤프에 굳이 이름이 필요할까 싶다.
그저 나에게 가장 얇고, 슥삭거리는 필기의 즐거움을 제공해주니 이보다 더 나를 길들이는 게 있을까 싶다.
이때 이후론 0.5샤프를 잘 사용하지 않으니 말이다.
* 결국 0.4도 구매하고 말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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